2시가 넘어 본 집회가 시작되자, 뒤늦게 도착한 농민들로 집회대열은 2만명 가까이로 늘어났다. 농민들은 '쌀개방 반대' 라고 쓰인 주황색 풍선을 들고, 여성농민들은 한국농업의 위기를 상징하는 하얀 소복을 입고 자리를 잡았다. 대회사에 나선 정재돈 전국농민연대 상임대표는 "식량주권은 하늘이 준 것이다. WTO가 아니라 WTO 할애비라도 이것을 빼앗아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쌀개방 여부는 국민투표에 부쳐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고 국민투표 실시를 촉구했다.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은 밥을 안 먹고 사나요, 생명을 가진 자라면 밥을 안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이라면 한해동안 땀흘려 힘들게 농사지은 우리 농민들에게 와서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오히려 미국, WTO의 말만 듣고 쌀개방이라는 칼을 들고 나와 농민들의 목줄을 죄고 있다"고 정부를 비난했다. 이어 김 대표는 "이제 우리가 똘똘 뭉쳐 일어나야 한다. 노동자 농민 우리의 힘으로 정치세력화를 해야한다"고 촉구했다. 김 대표가 말을 마치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삼성 임원의 평균 연봉이 58억인데, 지하철 청소용역 아주머니는 최저임금인 64만원을 받는다"며 "삼성임원 한 달 임금이면 아주머니 760명의 월급을 줄 수 있다. 우리의 삶을 이토록 불평등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WTO와 신자유주의다. 우리가 함께 싸워 이를 반드시 몰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농해수위)은 "민주노동당 열명의 국회의원과 전 당원이 쌀을 지키자고 나섰지만 아직 힘에 부친다"며 "죄송하다"며 농민들에게 사과했다. 강의원은 "밥 안먹고 사는 사람은 빼고, 밥을 먹고 사는 의원들은 모두 쌀 개방 반대에 나설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문경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우리 농민들이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이제 더이상 가만히 앉아서 우리의 생명을 유린당할 수 만은 없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농민들의 요구를 수용할 때까지 힘차게, 힘차게 싸우자"고 외쳤다. 이날 본 대회에는 여성농민노래패 청보리사랑, 대구노래패 소리타래도 나와 '농민가'등을 불렀으나, 이들의 공연마저 그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흥겨운 시간이 될 수는 없었다. 농민들이 직면한 상황이 그 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무대에 오른 노래패 소리타래의 여성멤버는 "주먹을 쥐고 힘차게 따라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농민들을 꾸짖기도 했다. 그는 "이 몹쓸 땅에서 농사지으면서 죽을 결심한번 안해 봤다면 진짜 농사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당장 내 배 가를 자신 없다면 죽기살기로 투쟁해서 반드시 쌀개방을 막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4시가 되어 대회를 마친 농민들은 '우리의 분노를 모아 청와대로 나아가자'며 시청쪽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이들은 쌀개방반대, 국민투표 실시 등의 구호가 적힌 백여개의 만장을 앞세우고 서울역을 출발, 서소문, 중앙일보 앞을 지나 5시가 다되어 시청앞에 도착했다. 농민들은 시청앞에서 열릴 민중대회에 결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