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가 농민값을 매기려느냐...

함께 살자 농민도 함께 살자!

- 2013 전국농민대회 당일 스케치 -



새벽부터 소 밥 먹이거나 밭엘 다녀옵니다. 그리고 식구들 먹을 아침밥상뿐 아니라, 함께 나설 사람들과 나눠먹을 떡과 음식도 챙깁니다. 여느 날보다 분주하게 아침을 보내고 여느 날보다 든든히 밥을 먹고는 집을 나섭니다. 오늘은 서울서 농민대회가 있는 날이니까요. 농민대회에 나설 전국의 여성농민들은 1122일 아침을 이렇게 시작했을 겁니다. 해년마다 점점 더 어려워지는 농민들의 현실. 그것을 바꾸기 위해 많은 것들을 하고, 천리길 서울도 오르락 내리락 하건만 우리 농민들의 요구안은 계속 늘어만 갑니다. 올해는 요구안이 10가지라합니다. 그것도 내년에 심을 종자 고르는 양 고르고 고른 요구안이라 합니다. 사실 우리 농민들의 요구사항, 10가지로 되겠습니까?..... 서울은 날이 춥다하던데 날보다 우리 농민들을 대하는 마음이 더 추운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농민대회에 가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는 대회 때 우리의 목소리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한 선전물들을 함께 만듭니다. 머리띠에 구호도 쓰고, 포대에도 쓰고.. 그리곤 짤막한 강연도 듣고, 떡도 나눠먹고.. 그러는 찰나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로 가던 농민들이 천안삼거리 부근의 고속도로를 막고 투쟁을 하고 있다고 말이지요. 뿐만 아니라, 죽전, 안성 휴게소 등지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도 알려왔습니다. 이렇듯 농민들은 모두 울부짖고 있습니다. 자식 같은 우리의 쌀, 배추, 고추가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 흩뿌려지는 것, 우리 농민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겠습니까? 쌩쌩 차만 달리는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가던 차를 멈추고 구호를 외치며 뛰쳐나오는 것, 그 마음을 농정을 만드는 그 사람들은 정녕 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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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길을 뚫고 우여곡절 끝에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로 서울역이 메워지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정겹고 반가운 얼굴들도 있습니다. 멀리 제주여성농민들도 비행기를 타고 왔네요. 삼삼오오 모여 앉아 그간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대회 전 사전 구호 연습도 합니다. 각자가 만들어온 쌀포대를 교환하기도, 사진을 찍기도, 머리띠를 나눠주기도 합니다. 3. 결의를 다지고, 구호를 외치고, 서울시청으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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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길놀이패의 흥겨운 풍물 뒤로 30여개의 현수막이 걸어갑니다. 그 뒤를 방송차가 잇고, 대표자들, 우리 농민들이 걷습니다. 한중FTA중단, 쌀값보장, 쌀시장개방반대의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쌀포대를 입은 여성농민들도 서울광장을 향해 걸어갑니다. 쌀포대를 뒤집어 쓴 한무리의 농민들이, 배추를 머리에 쓴 한무리의 농민들이, 방송차의 열띤 목소리와 함께 도심을 향해 담담이 걸으니 그 모습이 신기한 서울사람들은 연신 핸드폰을 눌러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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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걷다가 한국은행 사거리 앞. 우리는 주저앉았습니다. 언제고 주저앉아있기에는 차가운 그 아스팔트 위에 피땀이 어린 나락낱알과 배추잎을 흩뿌리며, 평생 농사지으며 살아와 까맣게 타고 주름진 손을 번쩍 들면서, 쌀값 보장! 한중FTA 중단!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실현! 을 외치며. 노랗게 물결치며 걸어가던 현수막들도 바닥에 붙어버렸고, 풍물도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원래가 제 집이었던 양 평생을 논밭을 누비며 살아온 농민들이 아스팔트 위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주저앉은 우리를 향해 경찰은 평생 살면서 들어볼 일 없는 이름도 어려운 법조문을 들먹이며 일어나서 계속 걸으라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왔는지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저 정해진 시간 내에 정해진 곳을 통해서 걸어야만 했던 겁니다. 우리 농업도 농민들도 이 행진처럼 정책을 펼치는 사람들, 윗사람들이 하는 대로 정해준대로 그저 묵묵히 걸어야 했던 겁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대도...... 우리는 거리를 막고 걷다가 주저앉다가 차선을 넓히려는 시도를 하다가 다시 주저앉았다가를 반복했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를 지지한다고 외치는 시민들도, 우리를 외면하는 시민들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서울시청광장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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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광장에는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친환경무상급식과 관련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인 농민들과 미처 서울역으로 모이지 못한 농민들이 운집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광장 구석,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과 따끈한 차로 목 축일 곳이 있었습니다. 서울 소비자들이 마련한 장소였습니다. 서울사람들은 날씨만큼이나 마음이 차가운 줄 알았는데, 이것을 우리 농민들 문제로만 본다고 생각했는데, 나눠주는 차 한잔이 얼어붙었던 몸 뿐만 아니라, 마음도 따뜻하게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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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배추머리 농민들도 구호종이를 든 농민들도 자리에 앉아 대회에 집중했습니다. 단체 대표자들의 인사, 강다복 전여농 회장님의 대회사에 이어 농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오신 분들의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8년동안 고작 4천원 올랐다며 말문을 여는 전농 이광석 의장님의 쌀값에 대한 이야기, 친농연 박종권 회장님의 친환경 무상급식에 대한 이야기, 제주에서 올라온 한중 FTA에 대한 이야기까지 마치고 난 후 소비자 합창단의 노래가 이어졌습니다. 이제껏 들어본 노래 중 가장 마음을 울리는 감동적인 무대였습니다. 이어진 순서는 정당발언. 현재 삭발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통합진보당 김선동의원과 정의당 천호선대표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이어지는 여성농민 노래단 청보리사랑의 흥겨운 공연! 대회는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상식 가톨릭농민회 회장님의 결의문 낭독에 이어 한중FTA 저지! 쌀값은 농민값! 이라는 거대한 현수막 파도타기 상징의식이 진행되었습니다. 겨울날 날은 금방 어두워졌지만, 모여있는 농민들 개개인에게서 나는 형형한 불빛때문에 광장을 밝았습니다. 상징의식 이후 행진부터 함께 해왔던 상여에 불을 붙였습니다. 자리에 있는 모두는 한중FTA를 비롯한 개방농정, 농민을 죽음으로 내보는 지금의 농정이 활활 타올라 한 줌 재가 되기를 기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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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서울에 모였습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단언컨대 농업은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그리고 농민은 이 미래와 희망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입니다. 미래와 희망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것들입니다. 농민을 농업을 값으로 매기지 마십시오. 농업과 농촌, 농민을 버리면 안 됩니다. 함께 삽시다. 함께 삽시다. 농민도 함께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