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FTA에 등골 휘는 농업계

미국, 유럽연합(EU) 등 거대 경제권과의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국내 농업계가 난타당하고 있다.

동시다발적 FTA는 ‘농업을 죽여 제조업을 살찌우는 협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지 오래지만 이에 대한 총체적 고민과 논의는 어디에도 없다. 정부는 그저 단순 피해보전이나 농업 구조조정 등만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한·EU FTA 체결로 향후 15년간 농업부문 생산감소액이 연평균 1776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돼지고기와 낙농품 등 축산업의 생산감소액이 1649억원으로 전체의 약 93%를 차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2007년 타결된 한·미 FTA에 따른 피해도 고스란히 농업부문에 집중돼 있다. 한·미 FTA로 인한 농업부문 피해는 한·EU FTA보다 5배나 많은 연평균 8700억원으로 예측됐다. 전체 농업 생산액의 2.6%에 이른다. 여파는 당장 가격하락과 농가수입 감소, 이에 따른 농민 이탈과 생산량 감소로 이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인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식량안보·주권 문제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우리나라는 매년 1400만t의 곡물을 수입하는 세계 5위 곡물수입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눈앞의 것만 얘기한다. 정부는 2007년 한·미 FTA에 따른 농업부문 대책으로 10년간 21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농가경쟁력 강화와 소득기반을 확충해 피해보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설명이지만, 농업계에서는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 방안이 결여됐다고 지적한다. 6일 서명된 한·EU FTA 농업 대책 역시 한·미 FTA 대책방안을 끌어다 쓰는 데 그치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송기호 변호사는 “WTO 체제에서는 안전판 역할을 하던 긴급수입제한 관세제도 등이 FTA협상 과정에서는 지나치게 많이 훼손돼 우리 농업이 시장개방 충격에 무방비 상태가 됐다”며 “국내에서 대응 논의가 좀 더 심화됐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국농민연합 이창한 정책위원장은 “선진국들은 농가에 대한 경쟁력 지원을 통해 식량자급률을 300%씩 끌어올리는 반면, 우리 정부는 농업회사나 기업농 중심으로 농업을 구조조정하는 데만 관심을 쏟고 있다”면서 “정부가 앞으로 중국, 일본 등과 FTA를 추진하겠다는데 이 같은 속도대로라면 10년 안에 중·소 영농인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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