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토종씨앗은 우리 미래…‘친정엄마 마음’으로 물려줘야”

우리 땅에 뿌리는 씨앗마저 외국산이 범람하는 시대다. 비싼 돈을 주고 산 물건너온 씨앗들이 우리 땅에서는 발아가 되지 않아 대를 잇지 못하는 ‘불임씨앗’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토종씨앗’을 지키기로 결심했다는 심문희씨. 더디고 고된 작업이지만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걸린 일이라며 오늘도 총총히 전국의 농가를 돌며 토종씨앗을 수집하고 있다. | 이원규 시인 촬영


온 지구에 떼죽음의 공포가 휩쓸고 있다. 벌·새·물고기·거북이 등이 세계 곳곳에서 집단폐사하는 가운데 한반도에서는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로 소·돼지·닭·오리 등 사상 최악의 ‘살처분’이 이뤄지고 있다. 대책 없는 대책뿐이다. 마치 인류 종말의 때가 다가온 듯 죽음과 죽임의 이 끝없는 행렬 앞에 털썩 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에는 우리나라 토종벌이 집단 폐사했다. 6~7월 강원도 지역에서 토종벌들이 죽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전국적인 떼죽음으로 이어졌다. 원인은 ‘토종벌 괴질’이라 불리는 ‘낭충봉아부패병’의 확산 때문이다. “만약 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 안에 멸망할 것”이라는 아인슈타인의 경고가 섬뜩하게 다가온다. 지구 전체 식물의 3분의 1이 벌의 도움으로 수분하기 때문에 인류는 식량 고갈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치밀하게 서서히 진행된 위기가 있다. 바로 토종씨앗들이 사라진 것이다. 토종은 본토종 혹은 본토박이와 같은 말이다. 토종이 살아있는 종의 다양성과, 토종이 없는 종의 다양성은 실로 큰 차이가 있다. 아니, 차이 정도가 아니라 다양성의 근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옛말에 농부아사(農夫餓死) 침궐종자(枕厥種子), 즉 ‘농부는 굶어 죽더라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부터 씨앗은 종묘상에 가서 로열티를 지불하고 사야만 하는 ‘다국적 기업들의 상품’이 되었다. 그것도 발아가 되지 않아 대를 잇지 못하는 ‘불임씨앗’을 해마다 다시 사야 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토종씨앗의 새 바람이 불고 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쁜 바람이 아닐 수 없다. ‘1농가 1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주도하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토종씨앗사업단장 심문희씨(43)를 만났다. 장수마을로 알려진 전남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상사마을. ‘당몰샘’이라는 감로영천(甘露靈泉)의 약수로도 유명한 마을이다.

심문희 단장은 “급하게 서울 다녀오느라 집이 엉망이네요. 날 추운데 어서 들어오세요” 하며 환하게 웃었다. 얼마 전 유전자의 특정 형질을 인위적으로 조작한 옥수수 등 일부 유전자변형농작물(GMO)이 유출돼 국내 토종종자의 채종포 인근에서도 자라고 있는 것이 공식 확인되는 바람에 서울에 다녀왔다고 한다.

“정말 큰일 났습니다. 옥수수·유채·면화 등 수입 GMO가 전국 26곳에서 유출돼 11곳에서 싹이 터 자라고, 나머지 15곳에서 알곡 상태로 발견된 사실을 최근 국립환경과학원을 통해 공식 확인했지요. 이는 정부기관에 의해 최초로 공식 확인된 겁니다. 농업 생태계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어요. 이러다간 농민들이 GMO를 토종종자인 줄 알고 재배하는 사태도 생길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한 번 유출되기 시작하면 농업과 생태환경에 엄청난 피해를 일으키는데, 아직 GMO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낮은 게 문제입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여주 남한강변의 홍일선 시인이 일찍이 펴낸 시집 <한 알의 종자가 조국을 바꾸리라>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이미 여러 나라가 유전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자기 종자를 지키기 위해 종자은행을 설립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는 많이 늦었다. “6년 전부터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벌여왔지요. 특히 여성농민에게 씨앗은 단순히 먹거리의 원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씨앗은 수천년에 걸쳐 전해져 내려온 조상들의 역사·문화 및 생물의 다양한 유전자가 담겨 있는 민족의 소중한 자원이지요. 식량주권을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으로 접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거듭했지요. 토종씨앗이 GMO의 대안으로 꼽히지만 농촌진흥청의 종자은행에만 꼭꼭 숨어 있잖아요. 그래서 여성농민회가 나서 토종종자를 복원하고 그 씨앗으로 농사를 지어보자며 시작했지요.”

그녀의 말처럼 농민들이 시장에서 종자를 사다가 재배하면서부터 거름·비료·농약·농기계뿐만 아니라 친환경농업을 위한 미생물제제까지 구입해 농사를 짓게 됐다. 농부가 씨앗을 스스로 확보하지 못하고 외부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결국 돈이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 결과가 된 것이다. 이는 한국 농업이 세계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주도된 녹색혁명형 농업으로 재편된 결과다. 신자유주의 무역체제 속에서 농업의 미래는 물론 국가의 미래까지 위협받고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 농민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심문희 단장은 “그러나 막상 시작을 해보니 쉽지 않았지요. 토종씨앗에 대한 개념도 잘 안 잡혔고 일도 더딜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사실 토종씨앗은 농약이나 비료를 치는 육성품종에 비해 수확량이 적고 관리하기도 어렵다. 이미 농업은 대규모·상업화에 길들여진 바람에 토종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우리 텃밭’이었다. “어차피 대규모 농사를 못 지을 바엔 텃밭에라도 심어보자는 것이었죠. 농사짓는 사람도, 그리고 먹는 사람도 행복한 먹거리를 그야말로 전통방법으로 생산해보자는 것이었죠.”

전여농은 국제적인 종다양성위원회 활동을 통해 이미 오래 전부터 ‘씨앗’에 주목했다. 여성농민이 씨앗을 갈무리하고 보관하며 재파종하는 역할을 담당해 온 역사와 맞물려 ‘종자주권을 지키는 활동이야말로 여성농민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식량주권 운동’이라고 정리한 것이다. 2005년 통일텃밭 운동을 제안하면서 시작된 뒤로 토종씨앗에 대한 개념 정리, 외국의 활동사례 연구, 우리 씨앗에 대한 조사 등이 진행됐다. 2008년에는 환경운동연합과 ‘만원의 행복’을 통해 마련한 ‘토종씨앗 시민기금’으로 토종옥수수를 심고 수확해서 보내는 국민적인 활동으로 한 걸음 발전했다. 2009년에는 전국적으로 토종씨앗 채종포를 만들어 토종씨앗을 심고 증식하고 체험하는 장으로 운영했으며, 2010년에는 ‘1여성농민 1토종씨앗 지키기’, 토종씨앗 실태조사 등과 ‘토종씨앗 축제’도 열었다.


“토종씨앗을 종자은행에만 보관하는 게 아니라, 기후에 적응시키면서 채종을 해야 합니다. 토종종자연구회 회장인 안완식 박사께서 분양해준 600여종의 씨앗, 그 지역에서 예전부터 심었던 씨앗, 그동안 활동으로 늘린 씨앗 등 다양한 종자들을 전국의 여성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지요. 하지만 지난해에는 이상기후로 인해 토종농사의 작황이 아주 좋지 않았지요. 그런데다 동물들의 습격도 많이 받았고요. 맛있는 건 어떻게 알아가지고 새와 고라니, 멧돼지들이 토종씨앗을 파헤쳤지요. 어떤 농가는 토종콩 6알을 분양받아 심었는데 11알을 수확했다고 해요. 그래도 그 귀한 씨앗을 잃어버릴까봐 마치 금덩이라도 숨기듯 안경집 안에 고이 모셔놓았답니다.”

지난해 토종씨앗 실태조사를 하면서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토종씨앗이 거의 다 사라진 줄 알았지요. 그런데 70세가 넘으신 할머니가 토종씨앗을 무슨 보물창고에서 꺼내듯 귀하게 가져오시는 거예요. ‘언제부터 심으셨느냐’고 물으니까 ‘내가 시집오기 전 어머니 때부터 심었으니 한 팔십년?’ 하고 말씀하시는데 눈물이 핑 도는 거 있지요. 마을 곳곳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모두 진정한 스승이자 어머니인 동시에 민족의 운명을 짊어진 구원자들이었지요.”

언제나 ‘농민의 마음’은 ‘친정엄마의 마음’일 수밖에 없다는 그녀의 말이 심금을 울렸다. ‘1여성농가 1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은 어느새 ‘우리 텃밭’에서 ‘언니네 텃밭(http://we-tutbat.org)’으로 이름을 바꾸며 변화·발전했으며, 우리 종자와 전통농업으로 생명을 지키는 토종종자모임 씨드림(다음카페)도 활성화하고 있다.

“‘언니네 텃밭’ 제철꾸러미를 아시나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친환경 농사를 짓는 여성농민 생산공동체와 소비자들이 함께 짓는 농사지요. 소비자 회원이 월 10만원의 회비로 생산자를 지원하고, 생산자는 월 4회 제철 농산물로 이루어진 꾸러미를 소비자 회원에게 보내드리지요. 토종씨앗을 지키는 동시에 제철 농산물을 중심으로 전통가공식품이 함께 교류됩니다.”

20년째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세 딸을 키우는 심 단장은 지난 4년 동안 서울을 오가며 여성농민회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남편 김봉용씨(45)는 전국농민회 광주전남연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동분서주하니, 전남대 운동권 선후배이자 동지로 만난 뒤부터 줄곧 부창부수였다. 거기에다 첫딸 하린양(19) 또한 스스로 한국농대에 지원해 합격했으니 문득 우리 농업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