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해방의 참꽃으로 부활하소서
성주군 여성농민회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렇게 황급히 보낼줄을 성주군 벽진면 봉학1리 434번지 뒤늦은 새둥지 지나온 시절보다 살뜰하게 재미나게 용식아저씨랑 손잡고 왔을텐데 짧디 짧은 5년, 벌써 당신과 마지막이라니 꿈에도 몰랐습니다
언제라도 보고 싶으면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언니는 그자리에 있을거라고 혹여 농사일에 바빠 얼굴보여주지 않아도, 일상에 지쳐 잠시 비춰주지않아도 늘 그자리에 있을거라고 그래야만 할거라고 추호도 그리 생각했는데 차마 몰랐습니다 여성농민 이름으로 처음 오셨던 경북여성농민한마당에서 여러사람 앞에 떨린다고 두근반 세근반 청심환으로 가슴달래며 발그레한 볼 멋드러진 노래 부르시던 모습 눈에 선합니다
지난 봄 집 뒤 참꽃 발갛게 물들어 혼자 보기 아까워 집안일에 농사일에 여성농민회 활동으로 바쁜 동생들, 언니들과 밥지어 나누고 싶었는데, 못했노라 가슴져미셨다며 기어코 우리를 불러 곡우물에 백숙 끓여 우리 입으로 옮져지는 밥 숟갈 좋아라 좋아라 했는데 97년 98년 IMF로 나라도 유수한 대기업도 판판히 깨어지고 넘어질때 세상과 상관없이 살아온 구미의 작은 공장 노동자 아저씨 손잡고 정리해고 칼바람에 막막한 보따리 성주사는 언니, 형부 언덕삼아 알콩달콩 앞날 그림 꾸었을 텐데 언니, 형부 같이 살면 되겠지 동네 보선언니, 길순이 , 미향이 가슴 추울때 벗삼아 어울리며 부대며 살면 살아지겠지 낮선 곳 금새 따듯해지듯 땡볕 비닐속에서 비지땀 뚝뚝 참아내면 설마 구미생활보다 못하랴 살았을 터인데 익숙치 않은 농사일, 뚝살, 결린 어깨 여사로 여기며 첫해 농사 두해농사 빚으로 답해도 더 열심히 일하고 늘리면 되겠지 버텨온 5년 퇴직금 곶감 빼먹듯 날리고 세상 농민 다지는 부채 늘려가며 언니, 형부, 길순이, 미향이 보며 힘들어도 그래 참자 참자 살아왔을 터인데 꿈에도 몰랐습니다 세상의 농민으로, 그것도 구석진 초라한 여성농민으로 살면서 일년 365일 하루에도 수백번 수천번 생사를 곡예하듯 살아도 금쪽같은 언니, 형부 언덕삼아 늘상 보듬고 싶었던 여성농민과 어우러져 관광차에 몸을 실어 농민깃발 여성농민의 한.
당신의 것으로 알고 힘들어도 어려워도 쓰러지고 눕고 싶어도 화사히 웃으며 그자리 그곳에 있을줄 알았는데 5년이라니 기가 막히고 가슴이 찢어져 당신을 어찌 보낼꼬 어찌보낼꼬 경옥언니, 김상권 부회장님 뵈면 언니 얼굴 보일텐데 보선언니, 길순씨, 미향씨 만나면 언니 본 듯 반가워도 눈물 더 먼저 떨어질텐데 여의도 벌판, 펄럭이는 성주깃발 언니의 아우성인듯 가슴미어지는데 언니를 어찌보낼꼬 어찌보낼꼬 언니,
추옥언니! 어저께 그저께 여의도 전국농민대회 치루고 , 남쪽 부산까지 종횡무진 누비고 전국의 농민들, 전국의 여성농민회총연합 우리 동지들 짬도 두지 않고 언니 영정앞에 모였습니다 동네의 벗에서 당당한 여성농민운동가로 성주의 다정한 언니에서 거침없이 살아온 농민열사로 우리는 오추옥 열사 앞에 모였습니다.
오추옥 열사여! 제초제에 타들어가는 고통스러웠던 당신 육신 훌훌 재로 보내드려도 한없이 맑았던 당신 꿈 끝도 없는 인정 기억하며 당신이 부여잡았던 농민해방, 여성농민의 당당한 투쟁의 깃발 전국의 농민이 , 전국의 여성농민이 자랑스럽게 세워가겠습니다 "쌀개방 안돼. 우리 농민안돼.
노무현 물러가라 " 절절한 당신뜻 세워 당신인듯 당신 마음같이 살아 민족농업사수 ! 농민해방 ! 여성농민도 세상의 주인으로 세워나가겠습니다. 열사여 , 오추옥 열사여 고이 가소서
(2005년 11월 19일 영결식에서 )
성주군 여성농민회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렇게 황급히 보낼줄을 성주군 벽진면 봉학1리 434번지 뒤늦은 새둥지 지나온 시절보다 살뜰하게 재미나게 용식아저씨랑 손잡고 왔을텐데 짧디 짧은 5년, 벌써 당신과 마지막이라니 꿈에도 몰랐습니다
언제라도 보고 싶으면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언니는 그자리에 있을거라고 혹여 농사일에 바빠 얼굴보여주지 않아도, 일상에 지쳐 잠시 비춰주지않아도 늘 그자리에 있을거라고 그래야만 할거라고 추호도 그리 생각했는데 차마 몰랐습니다 여성농민 이름으로 처음 오셨던 경북여성농민한마당에서 여러사람 앞에 떨린다고 두근반 세근반 청심환으로 가슴달래며 발그레한 볼 멋드러진 노래 부르시던 모습 눈에 선합니다
지난 봄 집 뒤 참꽃 발갛게 물들어 혼자 보기 아까워 집안일에 농사일에 여성농민회 활동으로 바쁜 동생들, 언니들과 밥지어 나누고 싶었는데, 못했노라 가슴져미셨다며 기어코 우리를 불러 곡우물에 백숙 끓여 우리 입으로 옮져지는 밥 숟갈 좋아라 좋아라 했는데 97년 98년 IMF로 나라도 유수한 대기업도 판판히 깨어지고 넘어질때 세상과 상관없이 살아온 구미의 작은 공장 노동자 아저씨 손잡고 정리해고 칼바람에 막막한 보따리 성주사는 언니, 형부 언덕삼아 알콩달콩 앞날 그림 꾸었을 텐데 언니, 형부 같이 살면 되겠지 동네 보선언니, 길순이 , 미향이 가슴 추울때 벗삼아 어울리며 부대며 살면 살아지겠지 낮선 곳 금새 따듯해지듯 땡볕 비닐속에서 비지땀 뚝뚝 참아내면 설마 구미생활보다 못하랴 살았을 터인데 익숙치 않은 농사일, 뚝살, 결린 어깨 여사로 여기며 첫해 농사 두해농사 빚으로 답해도 더 열심히 일하고 늘리면 되겠지 버텨온 5년 퇴직금 곶감 빼먹듯 날리고 세상 농민 다지는 부채 늘려가며 언니, 형부, 길순이, 미향이 보며 힘들어도 그래 참자 참자 살아왔을 터인데 꿈에도 몰랐습니다 세상의 농민으로, 그것도 구석진 초라한 여성농민으로 살면서 일년 365일 하루에도 수백번 수천번 생사를 곡예하듯 살아도 금쪽같은 언니, 형부 언덕삼아 늘상 보듬고 싶었던 여성농민과 어우러져 관광차에 몸을 실어 농민깃발 여성농민의 한.
당신의 것으로 알고 힘들어도 어려워도 쓰러지고 눕고 싶어도 화사히 웃으며 그자리 그곳에 있을줄 알았는데 5년이라니 기가 막히고 가슴이 찢어져 당신을 어찌 보낼꼬 어찌보낼꼬 경옥언니, 김상권 부회장님 뵈면 언니 얼굴 보일텐데 보선언니, 길순씨, 미향씨 만나면 언니 본 듯 반가워도 눈물 더 먼저 떨어질텐데 여의도 벌판, 펄럭이는 성주깃발 언니의 아우성인듯 가슴미어지는데 언니를 어찌보낼꼬 어찌보낼꼬 언니,
추옥언니! 어저께 그저께 여의도 전국농민대회 치루고 , 남쪽 부산까지 종횡무진 누비고 전국의 농민들, 전국의 여성농민회총연합 우리 동지들 짬도 두지 않고 언니 영정앞에 모였습니다 동네의 벗에서 당당한 여성농민운동가로 성주의 다정한 언니에서 거침없이 살아온 농민열사로 우리는 오추옥 열사 앞에 모였습니다.
오추옥 열사여! 제초제에 타들어가는 고통스러웠던 당신 육신 훌훌 재로 보내드려도 한없이 맑았던 당신 꿈 끝도 없는 인정 기억하며 당신이 부여잡았던 농민해방, 여성농민의 당당한 투쟁의 깃발 전국의 농민이 , 전국의 여성농민이 자랑스럽게 세워가겠습니다 "쌀개방 안돼. 우리 농민안돼.
노무현 물러가라 " 절절한 당신뜻 세워 당신인듯 당신 마음같이 살아 민족농업사수 ! 농민해방 ! 여성농민도 세상의 주인으로 세워나가겠습니다. 열사여 , 오추옥 열사여 고이 가소서
(2005년 11월 19일 영결식에서 )